나와 남편은 영화 보길 좋아하는 집순이, 집돌이들이라 일주일에 영화를 4편 이상씩 본다.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들을 보고, 넷플릭스에 없으면 네이버 무비 등에서 결제를 해서 보는데
일주일에 3일 연속씩 볼 때도 있고 못해도 3편 이상은 보다보니 보는 영화들이 꼬박꼬박 쌓인다. ㅎㅎ
둘 다 좀비물을 좋아해서 좀비물은 못해도 한 번씩은 다 봤는데, 며칠 전에 '월드워Z'를 보고
어제는 볼 거 없나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부산행'을 봤다.
(사진출처 : 네이버 무비, 이후 나오는 사진들도 동일)
부산행(2016)
액션, 스릴러
연상호 감독 작품
국내 최초 좀비 영화
나는 부산행을 당시 극장에서 나쁘지 않게 봤고 이후 재탕을 한 적은 없다.
주관적으로 좋은 영화는 한 번만 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재탕에 삼탕까지 하지만, 그런 정도의 영화는 아니었다.
단지 극장에서 아, 돈아깝다 소리는 안 나왔던 그런 영화.
오히려 국내 최초 시도인 것 치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재탕하면서 그런 감상이 많이 깨졌다.
엄청 실망했기 때문.
첫째는 단연 배우들의 어설픈 연기.
다급하고, 안타깝고, 내가 다 초조한 상황인 장면에서조차 웃음이 나오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두드러지는 건 아이돌 출신인 안소희, 그리고 나름 촉망받는 기대주였던 최우식.
참고로 나는 둘 다 좋아한다.
안소희 연기 문제가 심각해서 상대역인 최우식까지 심각해보이는 건지 헷갈리는데 여튼 둘만 나오면 흐름이 깨지는 느낌이었다.
난 근데 이건 둘의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의 역량이 부족한 게 원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감독은 연출뿐 아니라 배우 연기 디렉팅까지 전반적으로 다 하는 역할일텐데, 연출 부분에서 부족한 것도 많다보니 연기 디렉팅까지도
대강 짐작이 된다. 악의적인 평이 아니라, 좀비 아닌 멀쩡한 사람들 역으로 열연하는 엑스트라들 연기를 보면 감독 역량이 보인다.
좀비떼를 뚫고 온 주인공 무리에게 안전한 칸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나가라고 화를 내는 장면이 있는데
잘 보면 정말 어색하다. 목적도 방향도 없는 감정들이 우르르 쏟아지는 기분. 그냥 무작정 화내라고 하니까 화내는 것 같은 인물들.
가라는 말만 주구장창 한다. 복합적인 감정이란 게 1도 없다.
잘 만든 영화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신경썼다는 특징이 있다.
놀라야 할 때 주연, 조연 배우들만 놀라는 게 아니라 엑스트라까지도 진짜 그 상황을 만난 듯이 놀라고... 그런 것들 말이다.
이런걸 놓치는 영화들은 화면 중심에 있는 주연배우가 한껏 감정을 뿜어낼 때 주변 엑스트라는 너무나 무덤덤하게 서 있는 장면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간혹 작품마다 연기력이 왔다갔다 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당연히 일차적으론 본인역량이 부족하여 나온 결과겠지만
그런 부분이 감독들의 디렉팅 역량을 비춰주는 단면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부산행은 이 부분은 정말 철저히 부족했다.
둘째로 정말 평면적인 캐릭터들.
영화의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 왜 이렇게 밋밋할까, 뭐가 부족한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느꼈는데 매력 있는 캐릭터가 정말 1도 없다.
제발 죽지마! 물리지 마! 엉엉 ㅠㅠㅠ 이렇게 이입한 순간이 없다.
그나마 마동석이 연기한 윤상화 역 정도? 물릴 때 정말 아쉬웠지...
아, 공유 얼굴은 당연히 매력 있다. 캐릭터 말고.
다각적인 캐릭터가 진짜.... 하나도 없다.....
다 완전 평면. 이런 캐릭터가 있어야 해, 하고 만든 느낌.
힘쓰는애1 임산부1 아이1 악역1 정의로운 사람1...
근데 이건 그냥.... 스릴러물이고 좀비물이니까 그렇다 치는데 아이와 임산부라는 캐릭터를 도구로 사용하는 게 너무 잘 느껴진다.
아이와 임산부는 당연히 신체적인 약자니까 위기상황에 너무 쉽게 놓이고, 강한 남자들에게 구조를 당한다.
이게 다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 희생들을 통해 살아남는다.
부산행에서 이 아이는 빽빽 울고, 어줍잖은 메시지를 주고, 아빠를 희생시켜 '이전까진 자기밖에 몰랐고, 양심도 조금은 말아먹은 사람이었지만,
이 사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깨우쳐 마지막엔 딸을 위해 희생하며 진정 아빠답게 거듭나는 아빠'라는 서사를 완성시킨다.
그니까... 그게 다다.
이러려고 이 캐릭터가 있구나 싶다.
얜 그냥 주인공 공유(=아빠)를 깨우치고 절박하게 만드는 도구다.
사실 그런 작품은 많다. 특히 좀비물, 재난영화 이런 건.
주인공의 핸디캡 같은 존재들.
근데 이 아이는 능동적으로 뭔가 했다 하면 흔히들 말하는 '발암캐'가 된다.
능동적으로 뭔가 할 때는 관객을 답답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냥 무능한 발암캐가 된다.
매력 있게 등장한 성경이라는 캐릭터도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냥 무능하게 구조당하는 임산부1이 된다.
힘쓰는 남편 역할을 빛내주고 끝난다.
심지어 마지막에 석우(공유), 성경(정유미), 수안(김수안) 이렇게 셋만 살아남았을 때 좀비가 된 용석(김의성)과 석우가 1:1로 싸울 때도
수안은 아빠~~~아빠~~~만 줄기차게 부르면서 엉엉 울고 성경은 어쩔 줄 몰라하기만 한다. ㅎㅎ....
이런 캐릭터들은 확실히 물린다.
수동적이고 지극히 평면적인, 도구로서 있는 캐릭터들.
캐릭터 성격 따윈 아예 의미가 없었던 것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고정되어 버리는 캐릭터들.
엉성한 배경설정도 영화를 망친다.
강원도 진양(가상도시)에서 시작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순식간에 전국을 덮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런거 안 따지고 본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영화에서 설명하려 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전날 서울역에서 감염된 감염자가 기차에 올라타는 것으로 영화의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이미 대전은 초토화되어 있고
부산은 초기방어에 성공했단다.
그건 다시말해 초기방어 할 만한 사태가 있었다는 얘긴데 어떻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간 거지...
알고 싶지만 안 알려준다니까 그냥 좀비물로서의 스릴만 즐기기로 한다.
좀비들의 특성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그냥 어두우면 잠시동안 못 보고 소리에 매우 민감한 정도.
웃긴 건 터널을 지날 때 어두운 점을 이용해 주인공 일행이 무사히 지나가는 장면이 두 번 정도 나오는데, 이기적으로 굴었던
칸 사람들이 좀비들에 물릴 때는 터널을 지나가는 데도 좀비들이 매우 활동적이다. ㅋㅋㅋㅋ
거기에 감염 속도는 인물마다 차이가 있어서 단정짓기 힘들다.
물리는 부위에 따라 속도 차이가 있는 듯 한데, 감안해도 주인공 및 주조연은 버프를 받아서 매우 늦게 변한다.
이건 그냥 의지가 남아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눈 감기로 한다.
기차에 단체로 몸을 던져 속도를 늦추는 좀비떼 장면이 있는데(월드워Z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거기서도 의문이 생긴다.
이전까지 좀비들은 지능이 전혀 없는 듯이 묘사된다. 그냥 사람이 보이면 달려들기 바쁜 모습.
근데 여기선 기차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매달리는 좀비에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는 걸 아는 것 같다.
망설임없이 친구좀비 뒤로 몸을 던진다.
지능이 있었나? 의문이 생겼던 장면.
물론 훌륭한 부분도 있다.
일단 좀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한다... ㅋㅋㅋㅋ
분장도 소름끼치게 잘한 편인데 다들 연기를 잘한다. 굉장한 열연.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비보잉 하는 분들이 좀비 역을 맡았다고 본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엄청난 기세다.
초반 여자 승무원 역할 하셨던 분이 꽤 길게 나오는데 연기 정말 잘한다.
공간의 제약이 있다는 설정도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좀비물+공간제약 설정은 봐도봐도 최고다.
새벽의 저주같이.
국내 최초로 시도한, 도전적인 좀비물, 뭐 이런 타이틀로는 나쁘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캐릭터 설정과 그 캐릭터를 설명하는 장면 등 '캐릭터' 관련은 다 실패해서 신파에서 눈물이 터지고 안타깝기보단
'아, 신파를 위해 넣었군' 하게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참고로 나는 눈물이 진짜진짜 헤퍼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오거나, 등장인물이 울면 거의 대부분 운다...)
좀비가 나오는데 배경이 익숙해서 좋았다.
좀비물을 좋아한다면 시간죽이는 영화로 한 번쯤은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여기까진 물론 정말 지극히 온전히 주관적인 감상평이다.
우리나라도 계속계속 더 발전적인 좀비물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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